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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草亭/南道別曲

통리...잊혀지지 않는 나의 추억들

by 南道 2007. 10. 20.

가을이어서 그런지...

가끔 아주 오래된 기억들이 나고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50년 전 기차를 타고 통리로 이사하던 기억이며

초등학교 마룻바닥에서 공부하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책상 걸상도 없는 마루바닥이 얼마나 추웠던지....

 

통리....

강원도 태백시에 통리라는 곳이 있다.

영동선 열차가 지나는 곳으로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추억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1959년 강원도 태백시(당시는 삼척군)에 있는 통리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린 시절이지만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5,16 혁명과 박정희 대장이다.

군사혁명이 나던 1961년은 국민학교 3학년이었지만 지금도 기억난다.

어린 국민학생들에게 5,16 혁명 공약을 외우게 하였기 때문이다.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4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문장을 기억하고 있으니 어릴 적 기억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그렇게 혁명 공약을 외우던 나는 박정희 대장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본 일이 있다.

4학년 때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박정희 대장이 첩첩산중 통리에 온 일이 있었다.

당시 통리에서 심포리까지 철도가 개통되었는데 개통식에 참석하러 온 것이다.

산골이라서 사람이 많이 없어서 그랬을까?

국민학생들을 행사장에 동원하였기 때문에 박정희 대장을 볼 기회가 있었다,

맨 앞줄에서 별 4개가 번쩍 거리는 박정희 대장을 보았던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통리역도 나에게는 여러가지 추억이 많은 곳이다.

당시에는 영주에서 기차를 타면 통리가 종점이었다.

강릉 방향으로 계속 가는 사람들은 산 아래 심포리까지 걸어서 갔다.

심포리에서 강릉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리에서 심포리까지 해발고도가 약 500~600m 정도 되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따라 두번 심포리까지 걸어가서 기차를 타고 강릉으로 간 일이 있다.

길이 험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짐을 날라주는 지게꾼들이 많았다.

기찻길이 연결되면서 지게꾼들은 사라졌지만 나의 기억 속에는 지금도 남아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국토 건설단이다.

통리에서 황지로 넘어가는 도로를 국토 건설단에서 공사를 하였다.

어른들이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국토 건설단이라는 것을 알았다.

6,25 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겪은 후 병역 미필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군사 정부는 병역 미필자들을 소집하여 일정 기간 일을 시키고 병역을 면제해 주었던 것이다.

 

지난 8월 태백을 방문하였을 때 통리를 가 보았다.

초등학교 건물도 아담하게 새로 지어졌고 새로운 철길 공사를 하고 있었다.

45년 전에 만든 현재의 기찻길을 대체하는 철길을 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황지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4차선으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오늘 아침 강원도 산골에 얼음이 얼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강원도 뉴스는 나를 설레게 한다.

얼음이 얼았다는 뉴스를 보며 불현듯 옛 생각이 난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 광부로 일하며 자식들을 키우시던 분들은 대부분 떠나셨다.

귀 밑에 서리가 내린 나이가 되어 초등학교에 다니던 생각을 하니 모두가 한바탕 꿈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