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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草亭/南道別曲

31년 만의 이별...정든 회사를 떠나면서

by 南道 2009. 12. 11.

만나면 언젠가 헤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만난 우리 회사와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모두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무심히도 흘러 30년이 넘었네요.

 

30년 동안 변함없이 내 생활의 중심이었던 회사...

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19시

후배들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마지막으로 퇴근하였습니다.

 

아!

길고도 긴 세월.......

무거웠던 짐을 내려 놓았습니다.

이 순간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내가 우리 회사를 만난 것은 정말 운명적이었습니다.

나는 34년 전 태백산 아래 산골 마을의 작은 공장에서 전기공으로 일하였습니다.

큰 딸이 태어난 뒤 3년이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도시로 탈출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달 반 만에 취직한 곳이 지금의 우리 회사입니다...... 그리고 30년 5개월.....

 

전기 기능공으로 입사하여 3교대 근무를 하였습니다.

휴일도 없는 3교대 근무였지만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내 아이들이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년 동안 기능직 전기공으로 일하다 운명처럼 전기부서의 작업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사무기술직으로 신분이 바뀌어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25년간 관리자로 일을 하였습니다.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의 설비관리 책임자로 수많은 날들을 고뇌하며 살았습니다.

 

인전사고로 동료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것도 보았고,

화재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복구 작업에 많은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습니다.

기계가 고장 나면 밤새워 고치느라 퇴근을 잊은 날이 또 얼마였는지 모릅니다.

 

동생처럼 평생 따르던 직원들도 있었고 아들, 딸 같은 직원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내 사랑하는 가족이고 친구였습니다.

식당의 아주머니, 교대 근무하는 젊은이들, 저임금의 협력회사 직원들,

기계, 전기, 생산부서에서 땀 흘리는 직원들....

그리고 밤낮으로 노심초사하는 공장의 관리자들.....

그들이 있어서 IMF도 이기고, 금융위기도 견디었습니다.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을 남기고 나는 떠납니다.

산적한 문제들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기 있고 능력이 있는 후배들이 있기에 든든한 마음입니다.

어려운 일들이 많겠지만 서로 화합하여 더 좋은 공장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